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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부모 따돌림이 무엇이고, 그것에 대해 무엇이 취해져야 하는가?

최종 수정일: 2020년 3월 29일




1. 논문명 :

온타리오에서의 부모 따돌림: 부모 따돌림이 무엇이고, 그것에 대해 무엇이 취해져야 하는가? (Parental Alienation in Ontario: What Is Parental Alienation, and What Should Be Done About It?)


2. 저자 :

Margaret Michelle McKelvey


3. 발행기관 :

토론토대학 법학대학원 석사학위 요건에 따라 제출된 논문


4. 번역 내용 :


개요


본 논문은 온타리오에서의 양육권 및 면접권 소송에서 부모따돌림을 탐구하고, 부모따돌림이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를 조사하며, 용어의 타당성을 논하며, 법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정의를 식별한다. 이 논문은 또한 온타리오 법원이 지금까지 부모따돌림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평가하고, 약점 영역을 식별한다. 구체적으로, 따돌림과 불화(반목)를 모두 암시하는 요소가 있는 사례들에서는, 부모따돌림 대한 식별과 대응이 빈약하다. 또한 사건들이 일반적으로 적시에 다루지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청소년자녀들이 부모따돌림 사건의 당사자로 활동할 때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을 고찰한다.


서론


부모따돌림은 훌륭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모든 요점들을 가지고 있다; 가슴 아픈 부모, 사악한 전처, 희생된 자녀. 만약 현실 생활이 할리우드 같다면, 그 이야기는 결국 사악한 전처가 벌을 받는 것으로 끝날 것이고(혹은 빛을 보고 회개하는 것으로), 이전에 가슴 아파했던 부모는 현재 사랑스럽고 헌신적인 자녀와 재결합하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실제 삶은 할리우드가 아니며, 그러한 영화 같은 완벽한 결말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따돌림은 무엇이고 부모따돌림은 현실 세계에서 무엇처럼 보일까? 항상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까? 동화의 결말이 달성 가능한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법체계는 배우들이 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모따돌림은 미디어에 묘사된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부모따돌림이 80년대에 리처드 Gardner 박사에 의해 처음 정의되었을 때, 이 이론은 한 부모(자녀들이 선호하는 부모)가 다른 부모(따돌려지는 부모)에 적대하도록 하는 정서적 학대의 행동거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선호부모는 학대적인 부모인 반면 따돌려지는 부모는 죄 없는 피해자일 뿐이었다.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따돌려지는 부모가 항상 완전히 무죄라는 개념을 버리면서, 이 정의를 다소 수정했다. 따돌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따돌려지는 부모가 학대하는 부모가 아니었어야 하지만, 따돌려지는 부모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어느 정도의 불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행동거지와 관여되어 따돌림이 존재할 수 있다.

일부 저자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무시하기 위해 (남성들에 의해서) 사용되는 주장이라고 믿고, 부모따돌림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이지만, 부모따돌림의 핵심적 정의에 대해서는 다수의 학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공감대가 있다. 나는 이러한 핵심적 정의가, 부모따돌림 의혹이 제기될 때 법원이 활용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한 검사로 쉽게 옮겨 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지금까지 온타리오 법원은 부모따돌림 사례를 식별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그 식별은 일반적으로 따돌림의 핵심 정의를 암시하는 사실들의 존재에 대한 식별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따돌림과 불화가 둘 다 존재하는 경우 따돌림을 파악하는 데 덜 성공적이었으며, 종종 그러한 상황에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따돌림의 압도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있는 데도, 부모따돌림 사건은 지연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러한 사건들이 법정에 서고 따돌려지는 부모가 자녀와 거의 접촉하지 못한 채 몇 년이 경과하더라도 법원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지연은 따돌림의 구제책들을 제시한 모든 저자들에 의해 반증되고 있다. 그러한 사건에 관련된 자녀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법원은 부모따돌림 사건에 대해 권고되는 사건처리의 대응과 조기 개입을 더 잘 시행해야 한다.

부모따돌림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그러한 소송에서 자녀의 역할이다. 최근 온타리오에서 10대 자녀가 소송의 당사자로 추가된 후, 합의가 따돌려진 부모와 자녀 사이의 화해로 이어졌던 사건과 합의가 이루어진 사례가 두 건이나 있다. 이런 개입은 지배적인 통념에 반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 논문에서 나는, 부모따돌림의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회과학 학자들이 인정하는 부모따돌림의 핵심적 정의가 있으며, 양육권과 면접권 소송에 연루된 가정들의 한 특정 집합을 식별하고 묘사하는 데에 가정법원이 이 정의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논한다. 더 나아가 나는 적절한 개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가정들이 소송 과정 초기에 식별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온타리오 법원은 일상적으로 그러한 가정들을 적시에 식별하거나 개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논한다. 게다가, 나는 온타리오 법원이 종종 거부된 부모에게 양육결함이 있는 부모따돌림의 사건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과, 그래서 그러한 가정들에 더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부모따돌림에 관한 최근의 학문에 대해 법원이 더 잘 이해하는 것을 필요함을 논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모따돌림 소송의 당사자로서 나이 많은 자녀들의 참여가 그런 소송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찰한다.


부모따돌림 – 그것이 무엇인가?


Richard Gardner 박사에 따른 부모따돌림


부모따돌림은, 의사이자 콜롬비아 대학의 아동정신과 임상 교수인 Richard Gardner 박사에 의해 처음 묘사되었다. Gardner는 부모따돌림 증후군에 대한 묘사를 1985년에 처음 발표했고, 그 이후로 이 주제에 관한 여러 논문을 썼다. 그는, 부모의 프로그래밍이나 세뇌가 있어서 자녀가 다른 부모와의 관계를 거부하게 하면서 그 부모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폄하하고, 폄하되고 있는 부모가 자녀의 잔인한 거부를 설명할 만한 어떤 행동거지도 하지 않은 상황으로 부모따돌림증후군을 묘사한다.

Gardner는 적대적인 제도를 부모따돌림 증후군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로 간주하여, 그것이 당사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끊임없이 증가하는 복수의 악순환”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어떤 부모가 아이의 양육권을 받을지에 대해 너무 확실하지 않는 당대의 양육권법을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확실성의 결여가 부모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반면, 이전 세대들의 부모는 성공의 기회가 아주 적었었을 것이기 때문에 양육권 소송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부모따돌림증후군에 대한 Gardner의 정의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Gardner는 부모따돌림증후군을 야기 시키는 적대적 제도를 비난하지만, 조정, 협력적 가족법, 그리고 다른 형태의 대안적 분쟁해결 보급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부모따돌림 혐의 소송은 지난 20년 동안 증가하고 있다. 부모따돌림 혐의의 증가가 부모따돌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지 부모따돌림이 증가한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공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데에 반해, 부모따돌림이 주장되는 사건에 대한 연구는 항상, 소송과 따돌림의 발생 사이의 어떠한 가벼운 연관성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따돌림이 발견된 최근 온타리오의 한 사건에서, 부모는 처음에는 조정(mediation)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중재(arbitration)를 시작하여 결국 법원 시스템으로 돌렸다. 다른 한 사건에서 법원은, 부모의 첫 번째 자녀가 태어난 직후, 별거 또는 양육권 소송이 있기 훨씬 전에 부모따돌림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Gardner는, 어떤 사건들에서는 소송 분위기 밖에서 따돌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사건들을, 보다 일반적인 규칙의 예외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Gardner는,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따돌림증후군의 원인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적대적 제도가 부모따돌림을 발전시킨다는 Gardner의 이론을 필연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학자들은 부모따돌림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다른 원인을 제시해 왔다. 관계 파괴로 인한 갈등과 적개심은 종종 정신건강문제로 언급되는 요인이다. 부모따돌림의 원인은 다양할 것 같으며, 부모따돌림의 발생률은 지난 수십 년간 다소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지만, 점점 더 부모따돌림이라는 표식으로 식별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Gardner 박사가, 양육권 소송이 부모따돌림증후군을 촉발시킨다고 비난함으로써, 따돌려진 부모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따돌림의 격렬함을 증폭하게 될 것임을 근거로 하여, 따돌려진 부모들이 양육권을 추구하거나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꺼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격심한 따돌림을 해소하는 최선의 구제책이 양육권변경이라면,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법원의 권력이 필요하다. Gardner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부모따돌림이 초기 단계에 잡혔을 때 가장 잘 치료된다고 논하고 있다. 대부분의 양육권의 분쟁에서는 이로울 수 있는 중재에 투입되는 시간이, 부모따돌림이 존재하는 소송에서는, 효력 없이 지연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전 배우자가 따돌림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 부모들이 법원 밖에서 중재나 협상을 시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부모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법원 제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중재와 협상은 소송과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Gardner의 부모따돌림 개념은 또한 그것의 성적 편향에 대해 상당히 비판받고 있는데, 부모따돌림에 대한 이런 비판은 Joan Meier와 같은 여성주의자 학자들에 의해 주로 제기되고 있다. Gardner는 다양한 요인들 탓에 어머니들이 따돌림을 조장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 아버지가 단지 10 퍼센트의 사례에서만 선호부모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는, 엄마들이, 자녀와 공유해 왔던 심리적 유대감의 파괴할지도 모를 양육권 소송에 위협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고, 여자들은 그들의 전 배우자를 향한 분노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Gardner는, 남자들이 별거 후 새로운 짝을 찾을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러므로 좌절감을 덜 느끼게 되고, 분노나 복수하고픈 마음을 덜 느끼게 된다고 논한다. 부모따돌림의 실제적인 예는 1989년과 2008년 사이 캐나다 사례의 31%와 1992년과 2011년 사이의 온타리오 사례의 34%에서 아버지가 실제로 선호되는 부모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통계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선호되는 부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지만, Gardner가 제시한 통계보다 훨씬 덜 극적이다. 더구나, 경증에서 중증 정도까지의 부모따돌림이 근본적인 부모-자녀 유대관계의 붕괴위협에 기인한다는 Gardner의 이론에 타당성이 있다면, 어머니들이 이혼 전에 유일한 전업주부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선호부모로 더 자주 판단되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녀양육은 여성주도형의 일이 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부모따돌림이 성별의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따돌리는 행동거지에 더 많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낸 것에 대해 Gardner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여성들이 보육에 대한 주된 책무를 더 가질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사실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Gardner는, 따돌리는 부모로 행동하는 엄마들이 (아빠에 비해) 월등히 많음을 과대평가한 것과 여성의 마음에 관해 그가 세운 가정들에 대해, 비판받을 수 있고 또 비판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앙심을 품거나 새로운 로맨틱한 파트너를 찾을 능력이 떨어진다는 Gardner의 논거는 부모따돌림의 원인에 대한 논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Gardner에 의해 사용된 부모따돌림에 대한 성별 묘사는 부모따돌림을 여성주의자 비판의 표적으로 만들고, 극단주의자 아버지권리단체에 의해 따돌림이 이용되도록 이어졌다.

Gardner의 부모따돌림에 대한 묘사는 그의 성별 논의와 묘사들로 인해 손상되었다. Gardner의 부모따돌림에 대한 핵심적 정의가 성 중립적인 데에도, Gardner의 부모따돌림에 대한 묘사가 성 편견에 의해 그렇게 훼손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Gardner의 성별 관련 표현과 관찰은 아마도 오늘날 30년 전에 존재했던 가족 역학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로 정당화되거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래로 가정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어 생물학적 대비 상황적 요인들의 종류에 대한 더 큰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부모들이, 그들의 전(원문의 new는 오타인 것 같음) 배우자가 짝을 가지는데 자기는 가지지 못할 때, 더 화가 난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이것은 성별적인 개념에서 일반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해석될 수 있다. Gardner가 부모따돌림에 기여하면서 논의한 많은 요소들은 유용하다. 몇몇은 성별관련 표현 때문에 문제가 있지만, 그것들은 배제시킨다고 전체 이론이 문제 될 것은 없다.


Gardner에 따른 부모따돌림 교정법


Gardner는 부모따돌림증후군을 따돌려지는 자녀에게 평생 정신과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정서적 학대의 한 형태로 보았다. 그는 자식을 다른 부모로부터 따돌리려는 부모는 심각한 양육 결함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양육권 결정을 내릴 때 법원이 이런 결함을 고려해야 한다고 논했다. 그러나 Gardner는 따돌리는 부모가 반드시 자식의 양육권을 상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따돌림이 종종 자녀와 부모 사이의 심리적 유대를 위협하는 양육권 소송에 의해 야기된다고 믿었다. 그 유대는, 자녀들의 발육기 동안 형성된 그들과 부모사이의 원초적인 심리적 연결이다. Gardner 박사는, 더 최근의 육아 구조나 부모따돌림증후군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녀의 발육기간 동안 어느 부모가 자녀의 주된 부모로 있었는지에 기초하여 양육권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자녀의 발육기간이 지난 지 오래될수록 그 부모와의 유대가 더 약화되고, 그에 따라 그 부모에게 양육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지지추정의 근거가 약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Gardner 박사는, 따돌림을 위한 구제책들을 논의하면서, 따돌리는 부모들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첫째 범주에는 적극적으로 자녀를 적대적으로 다른 부모에게서 따돌리는 부모들이 속하고, 둘째 범주에는, 따돌림이 문제인 것을 인식할 수 있으면서, 따돌려진 부모들과 협력하여 그 상황을 교정하려는 부모들이 속한다. 범주 1에 속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자녀를 하루빨리 현재의 돌봄에서 벗어나 따돌려진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자녀와 따돌리는 부모 모두에게 심리치료가 있어야 하며, 자녀가 따돌리는 부모와 접촉하지 않아야 하는 기간이 한 동안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자녀가 따돌리는 부모와 너무 빨리 접촉한다면, 그 치료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론이 있다. Gardner는 자신의 경험으로, 선호부모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따돌려진 부모의 보살핌에 놓여 진 자녀는 종종 그 부모와의 긍정적인 유대관계를 다시 발전시킬 수 있었지만, 자녀가 그 선호부모의 보살핌 속에 머물러 있게 되면, 따돌려지는 부모를 향한 그들의 적개심이 평생 지속되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고 했다. Gardner는, 범주 2에 속하는 선호부모들에 대해서,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과 건전한 심리학적 유대감을 갖고 있으며, 그 유대감이 양육권 소송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부모들이 자녀들의 양육권을 받아야 한다고 논했다. Gardner 박사는 그러한 경우 양육권 상황이 확정되면 부모 따돌림 증후군의 증세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요약 & 결론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표현된 부모따돌림의 개념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따돌림의 핵심 정의는 Gardner가 1987년에 제공한 정의와 동일하다; 자녀가 따돌려진 부모 자신들을 폄하는 곳에서, 그리고 자녀들의 잔인한 거절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따돌려진 부모가 행동하지 않은 곳에서, 자녀가 따돌려진 부모와의 관계를 거절하도록 만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프로그래밍이다. 이 핵심적 정의는 사실에 근거한 질문으로, 법원이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증거 없이도 부모따돌림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예"일 경우, 법원은 따돌림을 알아낼 수 있다.

1) 선호부모가 세뇌/프로그래밍 행동거지를 하였는가? (즉, 선호부모가 따돌려진 부모와의 관계를 훼손했음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

2) 자녀가 따돌려진 부모 자신들을 거절하고 폄하하고 있는가? (즉, 따돌려진 부모와의 접촉을 거부하거나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이고, 따돌려진 부모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

3) 따돌려진 부모는 자녀의 반응을 정당하게 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는가? (즉, 신체적, 성적 또는 정서적 학대의 증거가 있는가?)

따돌림에 대한 심리적 진단 및 권장되는 치료에 관한 전문적인 증거가 중요하게 남아있지만, 위의 정의를 사용하여 부모 따돌림에 대한 법적 검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것은 해당 주제에 대한 전문적인 증거가 없는 곳에서 유용할 수 있다. 위의 검사는 사실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며 전문가들의 의견이 작용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Gardner의 부모따돌림에 대한 정의는 따돌림에 대한 다른 개념들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법원은 따돌림을 논의할 때 Gardner의 이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Warshark, Friedlander & Walters 그리고 Kelly & Johnson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최근 연구는, 특히, 따돌려진 부모의 행동거지를 다루면서, 부모따돌림의 개념을 크게 강화시키고 있다. 법원은 부모따돌림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여 그런 학자들의 연구를 포함시킴으로써 득을 볼 것이다.

따돌림에 대해 권장되는 구제책들은 학자들 간에 약간씩 다를 뿐이다. 치료는 초기 단계로 시도될 수 있고, 가볍거나 중간 정도의 따돌림의 경우에 효과적일 것이다. 심각한 따돌림이 있어서 곳에서 그래서 치료가 성공적이지 못하거나 거부된 곳에서는, 양육권변경이 허용될 수 있다. 이 구제책은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이 구제책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견해는 약간 다르다. 극심한 따돌림의 사건들에 대해 Gardner는, "PAS 자녀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치료 상의 처치는 따돌리는 부모에 대한 그들의 접근을 줄이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치료는 최소한의 효과만 있다고 믿는다. Warshark은, Family Bridges 워크숍과 그리고 또 선호부모와의 접촉의 일시중단과 함께 결합되었을 때, 양육권변경이 따돌림을 교정함에 있어서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Friedlander and Walters는 양육권 변경을 따돌림에 대한 가능한 대응으로 간주하지만, 치료가 가장 중요하며, 얽매임이 있는 경우 양육권변경이 따돌림이 지속되도록 허용하는 것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기 개입이 최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여러 가지 권고되는 개입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따돌림에 대한 적절한 사법적 대응임이 분명하다. 부모의 따돌림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주어지는 즉시, 자녀와 선호부모를 위한 치료 명령이 있어야 한다. 불화(반목)를 암시하는 증거가 있다면 따돌려진 부모 역시 치료에 임해야 한다. 자녀들과 따돌려진 부모 사이에 어떤 접촉이 일어나도록 면접을 명령해야 한다. 면접 방문은 짧거나 심지어 감독될 수도 있지만, 관계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간의 면접이 필수적이다. 선호부모가 접촉을 용이하게 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 면접에 대한 법원 명령이 또한 필수적이다. 치료 그리고/또는 면접 후 가족의 역학 관계에 아무런 개선이 없다면, 양육권변경이 고려되어야 한다. 만약 따돌려진 부모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부모이라면, 그리고, 양육권 변경이 문제의 특정 아이에게 정신적 충격을 줄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때는 양육권변경 명령이 내려져야 한다.


(중략)


중간 단계에서의 개입의 지연과 결여


법원이 복합적 형태의 따돌림을 인정하지 않은 것보다 더 만연하고 잠재적으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따돌림의 증거가 있는 사건에 대해 법원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법원이 중간 단계에서 그런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신청서 발급과 재판 사이에 2년 이상의 지연이 드문 일이 아니다; 부모따돌림이 있었던 51건의 온타리오 사건 중 법원은 40건의 사건에 개입했고, 이 사건 중 33건에서, 개입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그 사건이 얼마나 오랫동안 법정에 있었는지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했다. 이 33건에 기초하여, 신청서 발급과 재판(또는 실질적인 개입이 있었던 동의) 사이의 평균 시간은 약 39개월이었다. 이러한 장기간의 지연은, 치료 사회가 옹호하고 있는, 조기 개입이 따돌림의 사건들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견해에 역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적어도 3건에서, 법원은 자녀들이 너무 나이가 많거나 그들의 입장이 너무 확고해서 법원 개입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하여, 개입의 결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연을 이용했다.

......

K(D) 대 K(M)는 부모따돌림과, 그리고 따돌림에 의해 자녀에게 야기되는 해악의 교과서적인 예다. 법원은 지연과 그들의 개입거부의 결과로 SK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사건의 지연의 초기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머니가 2006년 면접명령을 지키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시점과 2009년 아버지의 동의 사이에 왜 법원개입이 없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확실히 2009년 이전에 그 문제가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궁극적인 실패는 2009년 4월, 그리고 2010년 재판에서 또 다시, 법원이 개입을 거부한 것이다. 아버지는 급진적이거나 파괴적인 구제책을 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양육권변경이나 심지어 기존의 면접명령의 집행을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치료적 개입이 결국 SK가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SK가 상담을 받기를 단순히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법원은 이런 요청을 거부하면서, 어머니의 야비한 행동거지를 용납했을 뿐만 아니라, SK에게 분명히 유익했을 치료적 개입을 SK에 제공하지 못했다.


(중략)


이와는 대조적으로, Demers v. Demers의 사건은 조기개입의 이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사건에서 어머니는 별거하기 전부터도 아들에게 아버지의 중요성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약 6개월 동안 별거(하지만 같은 지붕 아래 사는)한 후인 1997년 3월, 양육권과 면접권 평가에 동의했다. 평가보고서는 1997년 7월에 발표되었으며, 어머니가 여섯 살짜리 아들과 목욕까지 하는 등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얽매인 관계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평가자는 더 나아가 아버지가 가족에서 제외되었고, 아들이 아버지와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하거나 그를 쳐다보는 것을 거부하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분노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평가보고서가 공개되자 어머니는 자물쇠들을 matrimonial home로 변경하고 아들이 아버지와 접촉하는 것을 2시간 이내의 짧은 방문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이를 감독했을 거다. 다행히도 1997년 11월 부모들이 동의에 응했을 때 아들은 매 3주마다 일주일 내내 아버지와 함께 지내야 하고, 거기에다 더해서, 매달 한 번씩 토요일 방문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어머니와 영향에서 벗어나 아버지와의 이런 오랜 방문은 아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고, 아들은 더 독립적이고 외향적이 되었습니다. 1999년 재판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양육권을 부여받았고, 어머니는 격주로 주말마다 면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Reeves 대 Reeves 사건에서 법원은 부모-자녀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초기에 개입했다. Reeves 대 Reeves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2000년 1월에 헤어졌고, 처음 두 달 동안 16세와 13세의 두 자녀는 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2000년 3월이 되자 자녀들은 아버지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2000년 6월이 되자 두 자녀 모두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와의 모든 접촉을 반대하고 있었다. 아동변호사무국은 2000년 10월 공술서를 준비하여 아버지의 양육에 극도로 문제가 있으며, 아버지가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켰고, 어머니에 대한 극심한 증오에 노출시켰으며, 아이들은 극도로 괴로워했다고 판시했다.

2000년 12월 아동변호사무국의 두 번째 공술서는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아이들이 어머니와의 면접을 반대하기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01년 1월 신청에서, Mossip 판사는 어머니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가지고, 아버지는 치료적인 환경에서 감독되는 면접권만 가지도록 명령했다. 이 사건과 Demers 대 Demers 사건은, 모두 현 절차 체제 내에서 사건들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중략)


결론


양육권 및 면접권 소송에서, 부모따돌림은 작은 비율이지만 실제로 있는 문제이다; 2011년 7월 현재 온타리오에서 보고된 170건의 결정에서만 언급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부모로부터 따돌려지는 자녀들은 잠재적으로 사랑하는 부모와의 관계를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약물 남용에 시달리기 쉽다. 1980년대 후반 Gardner에 의해 도입된 부모따돌림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온타리오 법원에서 잘 알려져 있고 상당히 잘 이해되고 있다. Gardner는 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녀가 다른 부모와의 관계를 거부하게 되고, 자녀가 적극적으로 부모 자신을 폄하하며, 폄하되고 있는 부모가 자녀들의 거절의 잔인성이 이해될 정도로 행동하지 않은 경우를 부모따돌림으로 기술한다.

이 정의는 Warshark, Friedlander와 Walters 그리고 Kelly와 Johnson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검토되고 확대되었는데, 그들은 Gardner의 초점을 따돌려지는 부모의 행동거지에 대한 조사를 포함하도록 확장시켰다. 자녀의 거절의 잔인성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자녀들이 보이는 몇몇의 부정적인 반응들을 정당화하는 행동거지를 따돌려지는 부모가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Friedlander와 Walters는 '복합 따돌림'라는 용어를 개발했는데, 이것은 따돌림뿐 아니라, 얽매어진 부모-자식 관계의 요소까지 있는 곳에서도 적용된다. 이 개념은 온타리오 법원에서 잘 사용되거나 이해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따돌림의 요소와 복합된 불화의 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부모따돌림을 식별하는 비율이 낮고, 부모따돌림이 판결된 경우에도 가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법정의 개입 비율이 낮다. 법원이 복합적인 형태의 따돌림을 식별해내거나 치유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사건에 연루된 자녀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다.

온타리오 법원은 또한 소송 과정의 지연 때문에 부모따돌림 사건에 연루된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법원이 초기 단계에서 개입하기를 꺼려하는 것까지 겹쳐 더 악화된다. 법원에 의해 부과되는 효과적인 개입 없이, 너무 자주 소송이 몇 년 동안 시들시들하게 방치된다. 신속하게 처리된 몇 안 되는 사건들은 부모따돌림을 적시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제를 연구했던 심리학자들에 의해 조기 개입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온타리오 법원은 부모따돌림이 당면한 문제로 식별되는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육권 소송에서 청소년자녀들의 직접적인 개입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최근의 두 온타리오 사건들의 결과는 부모따돌림 소송 건에서 청소년자녀들이 재판 과정에 더 참여하는 것이 이득이 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현상은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 이 두 소송 건에 관련된 청소년자녀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따돌림 사건들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자녀들과의 인터뷰가 그 점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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